
1. 생 퇴사
작년 7월 말에 회사를 생 퇴사를 했다. 여러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무언가 압박감에 시달렸지만, 회사 내에서는 그것이 당연했다. 인사평가에서 야근을 너무 안한다고 하셨다, 칼퇴가 너무 빈번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물론 야근이라는 것이 애둘러서 말한 것이고, 아마도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야근을 불사하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한다, 정도로 생각한다. 그 당시 평가를 듣고서 여러 교토식 화법으로 자진 퇴사를 가장한 '좀 더 퍼포먼스를 위해 노력해달라'라는 말을 듣고, 나도 일단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2시간 근무 뒤 집에 돌아가 오후 11~12시, 자려고 누웠을 때 울린 알림. "Kani님 이거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이 집단과는 이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자기 직전 퇴사신청 전자 결재를 넣었다.
그렇게 퇴사를 했다. 처음 퇴사하고서 느낀 것은 자기 파괴적인 혐오감이었다. "나는 이것도 못버티는 사람이구나.", "내가 좀 더 버텼으면 좋지 않았을까?", "나는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그저 내 나약함으로 차버린 것이 아닐까?", 각종 스스로에게 혐오적인 표현을 던졌다. 그 당시 우울증 판정을 받고 불면증 판정도 받았다. 너무 힘들었다. 약을 먹어야 잘 수 있고, 우울하지 않은 일상이 나한테는 이제 일상이 아니게 된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번 실패를 한다. 나는 이번에도 견디지 못했다.
2. 2025년이 끝날 때 까지
그리고 남은 2025년은 그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면접을 보고 나머지는 그저 스스로 어떻게든 쉬려고 했다. 근데 이미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쉰다는 방법도 무너져 버렸다. 두가지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다시 일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와 "그래도 이정도면 잘 해온거 아니야?"라는 생각이다. 전자가 우세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가 이 사회에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내 문제라면 다시 도전해서 증명해 보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2025년은 쉬면서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렇게 집착하지는 않았다.
2026년이 된 후부터가 문제였다.
3. 2026년 1월 부터 시작된 고통스러운 나날

그 이후 2026년이 되어서 나는 본격적으로 다시 일터로 돌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오만했다. 일터는 내가 돌아간다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회사가 받아줘야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걸 완전히 오해했다. 전 회사를 겪은 후 여러모로 스스로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까다로워 졌지만, 그런 내 까다로운 눈을 맞춰줄 회사는 없다. 그나마 타협하여 면접을 진행한 회사도 나를 까다롭게 봐서 다음 전형으로 가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내 눈을 낮췄다. 이력서도 손 보면서 어떻게든 합격률을 높이려고 했다. 이 때 부터 타율이 늘어났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회사 면접을 다니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존중을 하려 해도 상대는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 어느 ESG컨설팅 펌이었다. 내가 면접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설명드렸다. 그러자 기술쪽 면접관 분이 하는 말이 들렸다. "왜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평이하니 나도 그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 했다. 하지만 답변이 무례했다. 무례하긴 나는 면접관이야, 라는 태도였다. "저라면 그 때 그런 선택을 안했을 텐데요?", "지금. 상황 설명을 제대로 못해주셔서 제가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거 아닌가요." 같은 말이 오갔다. 그리고 마지막 다른 팀장의 말. "00님이 저희 회사에 들어오신다...", "저는 Kani입니다.", 물론 실수할 수 있다. 그치만 그 기술직 팀장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 다음 면접자 분이에요."
나는 존중하려 했지만, 그들은 내 존중을 면접자의 권리로 생각했다.
그 후에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전 회사에 서류를 요청할 겸 몇번씩은 연락하는 인사팀 팀장님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아직 개발직군을 뽑고 있고 관심있다면 연결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어떻게든 일을 해서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나도 컸다. 그렇게 팀장님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한 뒤, 일주일 뒤 팀장님을 뵈러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아직까지도 생각하지만, 너무 안일했다.
팀장님은 역시나 여러 이유를 이야기 하셨지만, 확실히 알았다. 퇴사한 사람에게 있어 공백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뽑을 이유가 있다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맞는 말이다. 내가 너무 급하고 안일했다. 그러면서 퇴사하기 전 평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다시 채용할 이유도 없고 채용할 근거도 없다.
그 떄 이후로 많이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했다.
4. 2026년 4월 까지, 절박함은 이용당했다
나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무작위로 면접을 보았다. 좋은 회사, 혹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에 합격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이전에는 "회사"였다면 4~5웗 부터는 "합격"에 집착했다. 합격이라도 해야 내가 인정받고, 내가 1인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인공지능 AX FDE직군 면접도 그랬다. 나는 최대한 준비해서 예상 질문과 이런저런 대비를 했다. 이 회사라면 타협가능한 선에서 내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는 회사였다. 면접관이 살짝 늦게 들어왔어도 나는 절박했기에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면접 중 고위 임원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면접실을 비워달라고 했는지 라운지에서 까지 가서 면접을 봤다. 나는 절박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절박함에 결정타를 날리는 말이 들어왔다. "꼭 어느 회사를 가도 되지만, 우리 회사에 와서 일해 주었으면 한다."라는 말과 이후에 면접 프로세스가 있지만 한 단계 정도 자신이 제안해서 건너 뛸 수 있다는 말까지. 나는 여러모로 흥분했다. 내 절박함이 이제서야 빛을 보는구나.
그리고 일주일 뒤 원티드에는 불합격 알람이 왔다.
나는 그 알람을 보자마자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들은 말이 전부 가식적인 말이었나? 그 어떤 신호도 아니고 그저 지원자 솎아내기였나? 그리고서 나는 바로 원티드를 탈퇴했다. 수많은 불합격 알람과 내역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볼때마다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서 면접을 진행했지만, 잘 된 것은 없었다.
내가 다니던 면접들은 전부 나의 절박함을 이용했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절박하니까 뭐든 하겠지, 이 불황에 이래도 안올거야?같은 면접이 많았다.
5. 5월 말의 무계획

그렇게 나는 한달 동안 면접을 그만 두었다. 너무 힘들었다. 더이상 면접을 보다가는 이제 내가 할 수 있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아무것도 안하니, 다행히 어느정도 회복이 되고 정비를 시작했다. 원티드를 다시 깔고 이것저것 지원할 것 지원하고 하다가, 우연히 하나의 공고를 보았다. 원티드 리크루팅 카니발 재팬.
여러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일본에 다시간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 가면 다시 이방인이 될텐데? 다시 잘 해낼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다가 갑자기 하나가 생각났다.
"나 지금 절박해."
이, 말 하나로 바로 일본어로 된 이력서를 미친듯이 작성하고 이것저것 일본어 관련 양식과 서류들을 준비했다. 절박했다. 이거라도 다시 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 1년 남짓한 일본생활을 하고서 돌아왔는데 다시 도전한다고 되겠어? 물론 그런 의심을 스스로에게 미친듯이 품었다. 그럼에도 나는 반론을 했다.
"실패해봐서 더 잘 알잖아."
이런 생각으로 여러 군데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며칠 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 리뷰] 모두의 네트워크 기초 - 10일만에 배우는 네트워크 (2024, 길벗) (0) | 2024.05.15 |
|---|---|
| [번역] 개발자를 위한 멘탈 케어 방법 6가지 (1) | 2024.03.15 |
| [도커 알아가기] Hypervisor(하이퍼바이저)와 Virtual Machine (0) | 2023.12.25 |
| RDBMS와 NoSQL - ACID, Transaction 등등 (0) | 2023.08.17 |
| [클라우드] CKA 합격 및 후기, 혹은 팁 (3) | 2023.06.05 |
